조선 전기의 선비.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송강(松岡). 안주목사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생원(生員) 하위보(河魏寶), 어머니는 사천이씨(四川李氏)이다. 아내는 참의(參議) 정륜(鄭綸)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생애]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애통함을 이기지 못해 3년 동안이나 여막에서 죽으로 연명하면서 시묘를 한 끝에 모진 병을 얻었다. 송강(松岡)의 위쪽에 있는 관어정(觀魚亭) 북쪽으로 백보쯤 떨어진 곳에다 정사(精舍)를 짓고 화초를 기르면서 장수(藏修), 양병(養病)하는 장소로 삼아 병을 고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송강정사(松岡精舍)라 이름하였다. 날마다 학문을 닦아 한결같이 옛 선비의 도로써 스스로 갈고 닦았다.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친족 간에도 화목하였다. 독학으로 학문을 닦아 깊고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언행이 일치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다. 남명 조식 문하의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외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에 대해 토론하였다. 관직으로는 사옹원(司饔院) 봉사(奉事)를 지냈다. [묘소]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등지니 사람들이 모두 그의 효성과 마음가짐을 애석해 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사죽리(沙竹里)에 있다. [상훈과 추모 ]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청계서원(淸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진양지(晋陽誌)』 『조선환여승람』(김해문화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