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노동자 투쟁

태광산업 노동자 투쟁

泰光産業勞動者鬪爭

Labor Strike at Taekwang Industrial Co., Ltd.

1987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의 태광산업에서 일어난 노동자 투쟁.

[정의] 1987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의 태광산업에서 일어난 노동자 투쟁. [역사적 배경] 태광산업은 노동자 수 1,500여 명의 섬유 생산 업체이다. 당시 태광산업의 현실은 식당에서 나오는 밥을 개밥이라고 부를 만큼 열악한 상황에 있었다. 이런데도 조합비만 2,000원 씩 꼬박꼬박 걷어갈 뿐 노동자들의 권익에는 무관심한 노조는, 투쟁현장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이에 태광산업 노동자들은 6월 항쟁을 경험하면서, 단결 투쟁을 통해 악덕 기업주의 이기심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하였다. [경과] 1987년 7월 22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2시 30분경 일부 노동자들이 스크럼을 짜고 “와, 나가자!”는 함성과 함께 운동장으로 모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집결하여 “어용 노조 몰아내자!”, “인간 차별 철폐하라!”고 외치며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고, 기숙사생들도 여기에 합세하면서 시위대는 금세 1,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운동장에서 계속된 농성은 오후를 지나 밤이 되고 비가 쏟아져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들은 상여금 인상, 휴가 보너스 지급 등의 요구 사항이 하나도 빠짐없이 쟁취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특히 나이 어린 여학생 노동자들이 용감하게 앞장섰는데, 이들은 도리어 나이 많은 노동자에게 집에 가서 쉬고 오라는 배려까지 하며 굳센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이들 어린 여학생 노동자들은 “수학여행 기간을 유급 휴가로!”, “장학금을 지급하라!”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밤새 빗속에서 농성장을 지켰다. 이들의 단결된 모습에 놀란 관리자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윽고 전무가 나서서 “이제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 차차 들어 주겠다.”고 회유하였으나 모두 “우! 물러가라!”라는 야유를 보내며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였다. 23일 아침 노동자들은 협상 대표를 뽑고 밤새워 토론하여 정리한 요구 조건을 가지고 오전 8시 30분부터 회사와 협상에 들어갔다. 장장 8시간의 협상 끝에 오후 4시 30분경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쟁취하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결과] 노동자들이 요구하여 쟁취한 사항은, 상여금 260%에서 400% 인상 지급, 특근 폐지, 여름휴가를 3일에서 4일로 연장, 휴가 기간의 유급 처리, 휴가비 30% 지급, 탈의실 캐비닛 설치, 샤워장 설치, 개밥 같은 식사 개선, 간식 개선[우유 첨가], 일반 학생 노동자 장학금 지급, 수학여행 기간 유급 처리 등이었다. 그리고 이후 적극적으로 투쟁한 노동자에 대한 회사 측의 탄압이 있을 때는 다시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농성 투쟁을 해산하였다. [의의와 평가] 태광산업 노동자 투쟁은 1987년 부산 지역 노동자 대투쟁의 첫 깃발을 올린 투쟁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노동 소식』(부산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1987) 『잔업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부산본부 노동문제특별대책위원회, 1987) 지역사회문제자료연구실, 『80년대 부산 지역 노동 운동』(친구, 1989)